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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외진 마을에서 3일 살기”

서닝입니다 2025. 4. 22. 13:37

– 대중교통도 닿지 않는 느린 마을에서 보낸 시간

여행지에 도착했는데 스마트폰이 터지지 않는다.
버스 시간표도 없고, 편의점 하나 없으며, 해 지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
사람들은 느리게 걷고, 하루는 더디게 흘러간다.
그렇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외진 마을에서 3일을 살아보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외진 마을에서 3일 살기”
“세상에서 가장 외진 마을에서 3일 살기”

 

지도 바깥의 시간 – 도착은 느리고, 삶은 더 느리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중간에 기차로 갈아타고, 다시 군내버스를 탔다.
그리고 마지막엔 마을 주민이 직접 몰고 나온 경운기를 타고 산길을 올랐다.
대중교통이 더 이상 닿지 않는 순간부터, ‘외진 마을’의 삶이 시작됐다.

이곳은 휴대폰 신호도 잘 잡히지 않았고, 인터넷은 되지 않았다.
그러니 자연스레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연결된 삶’에서 ‘고립된 삶’으로 전환됐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뭘 하지?’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마을회관 앞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었던 첫날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가치를 깨달았다.
아침엔 개 짖는 소리에 눈을 떴고, 점심엔 밭일하시는 어르신들과 김밥을 나눠 먹었으며, 저녁엔 마을에 하나뿐인 정자에서 모닥불을 피웠다.
이 마을에서 하루는 느리게, 또 느릿하게 흘러갔다.
시계보다 해의 움직임을 보며 시간을 느끼는 삶, 그것이 이곳에서의 일상이었다.

 

외지인과 마을 사람들 사이 – 조용한 관계의 온도


처음엔 낯설었다. 내가 이방인임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도 말을 걸기 전엔 경계의 눈빛을 잠시 흘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눈빛은 따뜻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둘째 날 아침, 마을 할머니 한 분이 “고구마 먹을래?”라며 불쑥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말수는 많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날 저녁엔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이는 작은 마을 노래방에 초대받았다.
노래방이라 해도 사실은 창고를 개조한 공간이었고, 노래보단 수다와 막걸리가 더 많이 오갔다.

이 마을엔 수십 년째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 안에 ‘외지인’은 나 혼자였다.
하지만 그들이 내게 해준 대접은 마치 며느리를 맞이하듯, 조카를 보듯,
정이 많고 온기가 가득한 환대였다.
관광객이 아닌 이웃으로 받아들여진 느낌,
그 경험은 내가 어느 고급 리조트에서도 받지 못했던 종류의 환대였다.

 

아무것도 없기에 보이는 것들 – 느린 일상이 주는 선물


이 마을에선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없었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해가 뜨면 일어나고, 비가 오면 쉬고,
산책하고 멍 때리고, 닭장 앞에 앉아 달걀을 기다리는 게 일과의 전부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단순한 생활 속에서 내 안의 복잡함이 사라졌다.
도시에선 분 단위로 움직이며 스케줄을 짜고, 머리는 항상 복잡했는데
이곳에선 머릿속도 차분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집 앞 개울에 발을 담그고, 물소리와 새소리를 듣는 시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감자를 까는 오후,
방 안에서 옛날 라디오를 듣다가 졸음에 빠지는 저녁.
그 모든 순간들이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야말로, 가장 충만한 경험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건 어느 럭셔리 여행지에서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고요한 깨달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