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외진 마을에서 3일 살기”
– 대중교통도 닿지 않는 느린 마을에서 보낸 시간
여행지에 도착했는데 스마트폰이 터지지 않는다.
버스 시간표도 없고, 편의점 하나 없으며, 해 지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
사람들은 느리게 걷고, 하루는 더디게 흘러간다.
그렇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외진 마을에서 3일을 살아보기로 했다.
지도 바깥의 시간 – 도착은 느리고, 삶은 더 느리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중간에 기차로 갈아타고, 다시 군내버스를 탔다.
그리고 마지막엔 마을 주민이 직접 몰고 나온 경운기를 타고 산길을 올랐다.
대중교통이 더 이상 닿지 않는 순간부터, ‘외진 마을’의 삶이 시작됐다.
이곳은 휴대폰 신호도 잘 잡히지 않았고, 인터넷은 되지 않았다.
그러니 자연스레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연결된 삶’에서 ‘고립된 삶’으로 전환됐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뭘 하지?’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마을회관 앞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었던 첫날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가치를 깨달았다.
아침엔 개 짖는 소리에 눈을 떴고, 점심엔 밭일하시는 어르신들과 김밥을 나눠 먹었으며, 저녁엔 마을에 하나뿐인 정자에서 모닥불을 피웠다.
이 마을에서 하루는 느리게, 또 느릿하게 흘러갔다.
시계보다 해의 움직임을 보며 시간을 느끼는 삶, 그것이 이곳에서의 일상이었다.
외지인과 마을 사람들 사이 – 조용한 관계의 온도
처음엔 낯설었다. 내가 이방인임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도 말을 걸기 전엔 경계의 눈빛을 잠시 흘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눈빛은 따뜻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둘째 날 아침, 마을 할머니 한 분이 “고구마 먹을래?”라며 불쑥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말수는 많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날 저녁엔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이는 작은 마을 노래방에 초대받았다.
노래방이라 해도 사실은 창고를 개조한 공간이었고, 노래보단 수다와 막걸리가 더 많이 오갔다.
이 마을엔 수십 년째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 안에 ‘외지인’은 나 혼자였다.
하지만 그들이 내게 해준 대접은 마치 며느리를 맞이하듯, 조카를 보듯,
정이 많고 온기가 가득한 환대였다.
관광객이 아닌 이웃으로 받아들여진 느낌,
그 경험은 내가 어느 고급 리조트에서도 받지 못했던 종류의 환대였다.
아무것도 없기에 보이는 것들 – 느린 일상이 주는 선물
이 마을에선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없었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해가 뜨면 일어나고, 비가 오면 쉬고,
산책하고 멍 때리고, 닭장 앞에 앉아 달걀을 기다리는 게 일과의 전부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단순한 생활 속에서 내 안의 복잡함이 사라졌다.
도시에선 분 단위로 움직이며 스케줄을 짜고, 머리는 항상 복잡했는데
이곳에선 머릿속도 차분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집 앞 개울에 발을 담그고, 물소리와 새소리를 듣는 시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감자를 까는 오후,
방 안에서 옛날 라디오를 듣다가 졸음에 빠지는 저녁.
그 모든 순간들이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야말로, 가장 충만한 경험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건 어느 럭셔리 여행지에서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고요한 깨달음이었다.